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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본문

책/소설

#17.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요비요비 2021. 1. 2. 15:00

 

 제목부터 재미없어 보여서 그동안 안 읽었던 책
하지만 앞쪽만 잠깐 읽어보려고 책을 펼쳤다가 그대로 끝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김지영은 결혼 3년차로, 남편 정대현, 딸 정지원과 살고 있다.
어느 날 김지영은 다른 사람인 듯이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김지영의 엄마인 듯, 작년에 죽은 동아리 선배 차승연인 듯.

시댁에서 시부모 앞에서도 김지영의 엄마인양 사부인, 사돈어른이라는 말을 해서
정대현은 혼자 정신과에 찾아가 아내의 상태를 말하고 치료 방법을 상의한다.


난 처음에 이 부분을 읽고 우와..빙의물인가? 이랬다
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보니까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어이가 없네


김지영의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주부, 두 살 많은 언니,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김지영은 어린 시절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제일 고생했던 것은 김지영의 어머니.
책 읽다보면 눈물이 난다.

둘째까지 딸을 낳고 셋째를 임신했는데 이번에 또 딸을 원치 않는 분위기에 김지영의 어머니는 혼자 낙태를 하고 온다.
(이 때는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고 한다.)

김지영의 어머니 오미숙은 오빠 둘, 언니 하나, 남동생 하나가 있는데
오미숙과 언니는 공장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서 오빠들이나 남동생의 학비에 돈을 보탰었다.
큰 오빠는 대학 병원에 들어가 평생 일했고, 작은 오빠는 경찰서장으로 은퇴하고,
막내는 사범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오미숙과 언니는 뒤늦게 학교에 다니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오미숙은 막내 동생이 고등학교 교사가 되던 해에 고졸이 되었다 한다.



오미숙의 상황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리 큰 고모가 떠오른다.
우리 아빠 형제는 총 5명이다.
첫째 큰 고모, 둘째 작은 고모, 셋째 울 아빠, 넷째 삼촌, 다섯째 막내 고모

우리 아빠 말로 큰 고모는 공부를 진짜 잘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장남인 아빠만 대학에 보냈다.
당시에 가난했던 가정에서 큰 고모는 우리 아빠에게 배움의 기회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아빠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큰 고모가 대학을 나왔으면 대학 교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큰 고모 친구들 중 대학 교수가 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아빠는 큰 고모에게 항상 미안함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김지영은 국민학교를 다닐 때 밥을 항상 늦게 먹었다.
남자들이 앞 번호라서 어쩔 수 없었다.


중학교를 다닐 때는 복장 규정이 여학생에게만 매우 엄격했다.
그리고 바바리맨을 잡은 여자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혼나는 모습을 본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원에서 어떤 남자애가 집까지 쫓아온다.
자기 앞자리에 앉아서 프린트를 전해줄 때 실실 웃으며 흘렸다고.
이제와서 왜 자기를 치한 취급하냐고.

김지영의 아버지는 왜 아무하고나 말을 섞고 다니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한다.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대학교를 다닐 때 김지영은 동아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는다.
평소에 행실이 매우 좋았던 선배가 자신을 ‘씹다 버린 껌’ 취급을 하는 것을 듣게 된다.


김지영은 면접을 보러 갈 때 탄 택시에서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 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 거야.”
라는 말을 하는 택시 기사를 만난다.


회사에서는 임신한 직원들을 위해 출퇴근 시간을 30분씩 늦춰 배려해줬는데,
김지영이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남자 동기가 30분 날로 먹는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 몸이 약해져서 찾아간 정형외과에서는 할아버지 의사가 이런다.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형광펜으로 밑줄 친 부분(사진에서 형광펜 친 것임. 책에 친 것 아님.)은 진짜 뼈 때리는 말이다.

전에 사회 공부할 때 우리나라 GDP가 실제보다 낮게 나오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주부의 가사노동이 경제활동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17살이나 어린 남동생을 거의 키우다시피 했었고,
옆에서 엄마가 갖은 고생을 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가사노동이라는 것이 다른 일보다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더 힘들다.

나는 매번 말한다.
아이 낳고 집에서 살림을 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집 밖에서 돈을 벌어오겠다고.
살림을 잘 하려면 부지런해야 되는데 난 그렇지 못하다.

가사노동에 값을 매긴다면 공무원 월급 이상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김지영은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와 유모차에 태운다.
오랜만에 커피 한잔을 사들고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데
옆 벤치에 있던 직장인들이 이런 대화를 한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여기까지가 김지영이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된 이유이다.



정대현이 찾아간 정신병원 의사는 김지영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아내를 떠올린다.
공부를 잘했던 안과 전문의 아내는 아이를 낳고 교수를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됐다.

의사는 그렇게 여자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병원의 상담사가 어렵게 아이를 가져 일을 그만둔다고 하자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라며,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본다고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소름돋는다.
마지막에 현실 반영이 너무 잘 되어있는 것 아니냐고..

그런데 더 소름이 돋는 것은.
내가 만약 저 의사였다면 나 같아도 저런 생각을 할 것 같다는 것이다.